거대한 생명체

지하 원룸의 창문으로 쪽빛이 들어오고 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지금이 몇 시일까 한참을 생각해 봤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생각해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오후 3시. 벌써 하루가 다 가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 무얼 하더라도 오늘 안에 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조차도…

-아오!!!!
-쿵!!

잠에서 깨자마자 화가 나서 벽을 치는 건 내 오랜 습관 중 하나였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하루를 시작하진 않겠지만 나는 종종 이렇게 시작한다.
티브이를 켜니 단정한 차림의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아나운서의 셔츠를 벗기는 상상을 하다가 병신같다는 생각에 티브이를 껐다. 또 한 번 벽을 칠 뻔하다가 수돗물을 한잔 마시고 밖으로 나갔다. 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오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완전히 망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완연한 봄이었다. 공원에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들과 젊은 엄마들 몇몇이 모여 있었다. 그녀들은 성숙해 보였지만 실은 나와 비슷한 또래일 것이다. 그녀들의 남편은 깨끗하고 단단해 보이는 옷을 입고 일하고 있을 것이다. 지저분한 꼴로 그곳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녀들에게 실례인 것 같아 벤치에서 일어났다.
횡단보도에서 회사원 무리와 섞여 신호를 기다리는데 그들의 담배 연기가 내 쪽으로 와서 나도 모르게 그들을 노려봤지만 가볍게 무시당했다. 그들은 나처럼 한가하지 않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뭔가를 위해 뭔가를 참으며 뭔가를…
우유를 사서 집에 돌아와 컴퓨터의 전원을 키고 부팅하는 동안 식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모두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하나 같다.
거대한 생명체의 세포들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체.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고 있는 동안은 잊을 수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게임 속에서도 뭔가를 위해 뭔가를 참으며 뭔가를…

-탕!탕!탕!탕!
-악!!
-탕!탕!탕!탕!
-악!!
-탕!탕!탕!탕!
-악!!
-탕!탕!탕!탕!
-악!!

오늘 나는 백번도 넘게 죽었다. 하지만 백번도 넘게 살아났다. 나는 살아 있다.
일기를 썼다.
‘종일 게임을 했다. 서버 점검이 있어서 졸라 빡쳤다. 오늘따라 렉도 존나 심하고 운영자 새끼들은 뭐하고 있는 건지 게임을 이따위로…’

-아오!!!!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