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과학 서문

만화적 사유의 즐거움

글 심대섭

사이언스 코믹(이하 사코)은 강철영, 심대섭, 이승환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들은 주말이면 홍대 주변의 한적한 카페에서 만나 최신 유행잡지를 들춰보며 건강, 영양, 피트니스, 패션, 재테크, 커리어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문득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종이 한 장씩을 꺼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2시간도 채 안 되어 3개의 만화가 완성되고 자리를 옮겨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진다. 쿨하다. 이들은 게임, 여자, 자동차, 군대, 슴가 얘기 따윈 하지 않는다.

사코가 처음 결성된 2009년 당시 이들의 나이는 29~30세였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당시, 이들은 어떤 종류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고 변화를 원했다. 이들은 늦잠이나 퍼질러 자던 일요일 오전 10시에 모이기 시작했다. 가장 무기력했던 시간이 가장 창조적인 시간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사이트를 오픈하기 전인 2009~2010년간 이들은 비공개 카페를 운영하며 다양한 작업들을 시도했다. 단편 소설이나 짧은 희곡, 초현실적 에세이, 시, 하이쿠, 오브제 작업, 욕망 스케치… 등을 시도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동기부여와 만족감이 떨어졌다. 일단 창작할 수 있는 환경과 에너지가 생기자, 이내 소통에 대한 열망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만화를 그릴 시간이었다.
이들은 일종의 릴레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방식은 이러하다. < 그림1>

그림1

자체 개발한 이들의 작업 방식에 주목하자. 얼핏 이 방식은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기존의 릴레이 만화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A는 B와 C가 맘대로 진행시킨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것은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이들은 이것을 서로에 대한 공격이라고 표현한다.) B와 C는 어차피 자신들의 만화가 아니기 때문에 평소보다 과감하거나, 짓궂거나, 무성의하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연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만화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암묵적인 수위가 존재하고, 앞에서 삽입된 컷이나 씬의 텍스트 일부를 어느 정도 수정하는 일도 가능하지만 어쨌든 A는 첫 번째 컷이나 씬을 그릴 때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당황스러운 전개를 두 번이나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A는 그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A가 만든 이야기일까? 그것이 과연 이야기이긴 한 걸까?

그것은 A가 만든 이야기이다. 릴레이 형식을 감안했을 때 사코의 만화는 주로 무관계 이동 (스콧 맥클라우드가 정의한 칸 사이 전환 방법 중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글과 그림의 연속 < 그림2>)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관계 이동 전개 방식의 빈도수가 가장 적으며 다양한 전개 방식(일련의 순간을 통해서 하나의 동작을 묘사하는 순간 이동 방식 < 그림3>, 하나의 주체가 하는 일련의 행동을 묘사하는 동작 간 이동 방식 < 그림4>, 하나의 장면 안에서 변동되는 일련의 소재들을 묘사하는 소재간 이동 방식 < 그림5>, 상당한 거리나 시간 사이의 전환을 묘사하는 장면 간 이동 방식 < 그림6>, 한 가지 관점의 장소, 생각 또는 분위기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양상 간 이동 방식 < 그림7>)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중간에 B가 무관계 이동 전개 방식의 연출을 시도하더라도 C나 A가 다시 관계를 형성시키고, 하나의 시퀀스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림2
그림3
그림4
그림5
그림6
그림7

또한, 이러한 작업 방식 내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시도되는데 A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그렸지만 셋이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우, 첫 번째 컷을 B가 그리고 마지막 컷을 C가 그린 뒤 A가 중간의 모든 컷을 그리는 경우, A가 시작은 하되 B와 C가 끝까지 완성시킨 후 A가 펜터치만 하는 경우, B가 시작한 만화를 C가 중간을 그리고 A가 완성해서 자기 만화로 만드는 경우, A가 B나 C 한 사람에게만 전개를 맡기는 경우, A가 시작한 만화를 B나 C가 그리다 만 상태로 다시 A에게 떠넘기는 경우, B나 C의 전개에 A가 불만을 표현해서 B나 C가 눈치를 보는 경우 등이 있다.

이처럼 사코는 ‘비 주관적인 방식의 만화 제작 기법’이라는 형식을 우위에 둔 일종의 형식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그것이 기존 만화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사코만의 혁신적 매력이다. 거의 모든 현대 예술 장르들이 자연스럽게 결과물 중심에서 벗어나 형식, 과정, 개념에 관심을 기울여온 반면 만화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가 갖는 고유의 폐쇄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서브 컬쳐로서 그 기능을 다 하는 좋은 만화들은 늘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러한 폐쇄성은 결국 만화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낮은 사회적 위상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종속적인 장르로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사코가 단순히 동시대 예술과 호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예술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식, 과정, 개념의 혼재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제작 기법을 살펴보면 automatism(무엇을 그릴까, 어떤 메시지나 의미를 담을까 고민하지 않는 무의식적 자동기술법), chance technique(다음 컷을 왼쪽으로 넘기느냐 오른쪽으로 넘기느냐에 따라 만화의 운명이 달라지는 우연 기법), improvisation(순간적으로 발휘되는 재치나 시시한 농담, 야한 생각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즉흥 기법), indeterminacy(B와 C의 개입으로 A의 만화가 A의 의도로부터 통제 불능이 되는 비결정 기법), rendering(3개의 각기 다른 프로세서가 연필로 처리한 글과 그림을 최종 프로세서가 펜 터치로 처리하는 렌더링 기법), impersonality(저자를 모호하게 만드는 몰개성 기법)와 같은 다양한 형식과 개념들이 순차적으로 뒤섞이며 해체와 재구성이 반복됨을 알 수 있으며, 그 결과 사코의 만화 내외부에는 상황(자신의 내면이 아닌 주변 여자들의 대화나 카페 분위기에 더 집중하기), 실패(실패한 만화란 걸 알면서도 사이트에 업로드하고 좋은 연구였다고 말하기), 도용(잡지나 기존 만화의 내용이나 이미지를 무단 도용하지만 그림이 엉망이라 뭔지 모르게 하기), 농담(쉴 새 없이 게임, 여자, 자동차에 관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딱 그 수준의 만화 만들기), 반 형식(형식을 만들고 다음 주에 까먹기), 놀이(수단이 아닌, 목적 없는 놀이로서의 만화), 무질서(세 사람의 질서가 모여 만드는 무질서), 소모(남들이 보기에 헛짓거리처럼 보이는 짓을 몇 년째 반복), 과정(결과보다 과정에 존재하는 참 재미), 퍼포먼스(두 시간 동안 한 편의 만화를 완성하는 수행과 행위로서의 만화), 참여(몇 차례 진행된 게스트와의 공동작업), 해체(만화에 대한 기대 심리 해체), 반 명제(변증법이 아닌 대위법적 사고), 부재(자신의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없을 시 남 탓을 하는 책임감의 부재), 병렬(서사나 글 중심이 아닌 컷과 컷의 관계 중심적 만화), 환유(왜색과 미국식 쿨함에 대한 반복되는 환유와 사케즘), 조합(맘에 안 드는 타인의 연출도 버리지 않고 끌어안기), 반 해석(만화를 만화 자체로 경험하기, 서로의 만화를 오독하고 오해하기), 반 서사(내러티브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기), 미시 서사(자신의 부끄러웠던 순간을 스케치하기), 욕망(폭력과 성적 묘사 남발하기), 분열(하나의 만화 속에 분열되어있는 시선과 캐릭터) 등과 같은 동시대 예술의 다양한 키워드들이 혼재하게 된다. 즉 아무렇게나 막 하고 있고, 그것은 정말로 터프한 일이다.

한국 만화의 시초인 1950~60년대 만화책들의 마지막 장에서는 심심찮게 ‘과학 만화’ 또는 ‘상식 만화’라고 이름 붙인 1~2페이지짜리 부록 만화를 볼 수 있다. 실컷 신나고 재미있는 만화를 그린 뒤 교육적인 요소를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다. 그것은 만화라는 장르 자체에 내재된 자기 검열과 자기 부정의 출발점이었을 수도 있고, 만화의 다양한 기능과 가능성에 대한 소극적 어필이었을 수도 있다. 만화는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높은 접근성과 자유도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내외적 오해와 구속을 받으며 대중 예술적 가치만을 간신히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만화의 순수 예술적 가치가 공론화되기란 불가능했고, 결국 순수 예술에 가깝거나 실험적인 만화를 그리는 작가와 집단은 점차 사라져 갔다(물론 뉴욕이나 파리같은 도시는 예외다. 뉴욕의 ‘Smoke Signal’ 을 보라!). 만약 만화가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라면 이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 장르가 전위와 실험을 포기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그 장르의 새로운 예술적 성취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는 대중 예술이다. 산업적, 오락적 가치에 대한 조명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 어떤 가치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사이코 코리아에서 엉뚱해 보이는 실험을 반복하는 사코는 사이언스 코믹이 아닌 사이코 코믹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좋다. 하지만 단언컨대 실험 만화가 사라진 세계에서, 만화를 예술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예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만화를 논하는 세계에서, 만화가 세계와 타인을 무성의하게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남용되고 있는 세계에서 여전히 만화 자체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사코의 존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사코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에게 사코의 유머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 만화적 사유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일일이 설명해줄 수는 없다. 이 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코는 만화가 아니다. 사코는 하나의 메시지다. ‘예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