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피

자신이 자신의 주체라는 착각 속에서 자신에게 명령만 내릴 뿐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는다
나는 나의 아버지나 아들로 살았을 뿐
한 번도 자신이었던 적이 없다

모두가 왕인 세계에서 익명의 시민으로 돌아가야 한다
행동할 수 있는 나약한 개인의 자격을 얻기 위해
현실을 만드는 재료를 얻기 위한 모험을 떠나기 위해
말로 세상을 바꾸려는 아버지에게 아들의 피를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 삶은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타도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이야기를 써보다 포기하는 겁니다
일상 속에 번개처럼 떠올라 영원한 안개로 머무는 겁니다
장면이 아닌 것을 장면으로 기억하는 겁니다
사이코패스의 미술치료 그림이 아닙니다
철학자와 활동가의 말과 행동이 아닙니다
외폭과 내폭이 동시에 일어난 땅입니다

집 앞에서 각자 자신의 따귀를 때리며 나가고 싶어하는 아들과 들어가고 싶은 아버지
아들아, 생은 이렇게 매 순간 우리에게서 도망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