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내면

아버지는 환갑이었다. 평일엔 사전 편찬 위원회의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고 주말엔 등산을 가거나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국문과 출신으로 이십 대 초반에는 작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진작에 포기하고 교직에 몸담아 평탄한 삶을 살았다. 얼마 전부터 지병이 악화되어 침대 신세를 졌는데 지난 월요일 저녁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건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특히 동생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맞다가 한쪽 청력을 잃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와는 늘 서먹했다. 어머니와는 수년 동안 연락이 없었다.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고 엉망인 컨디션으로 집에 돌아온 우리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쓰러져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잠에서 깬 나는 필요 이상 맑아진 정신으로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너 말이다
-네?
-나도 젊었을 땐 작가가 되려고 했거든 너처럼
-…전 작가 아닌데요
-내가 오랫동안 뭘 좀 쓴 게 있는데 그게 네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전 그냥 블로그에 취미로 뭘 쓰는 거라고 말씀드린…
-이건 너한테 좋은 자료가 될 거다. 작가라면 자기 아버지의 내면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괜찮습니다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이런 개새끼가!!

소파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그러고 보면 약간은 궁금하기도 했다. 얼마나 감상적이고 시시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쩌면 나는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을 잃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가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냄새가 났다. 익숙하지만 결코 좋아할 수 없었던 냄새. 빌어먹을 인간. 그는 우리에게 좀 더 잘 해줄 수 있었다.
굳이 어디에 있나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그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서랍이란 서랍엔 모조리 다 채워져 있었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라 한참을 읽어 봐야만 했다. 놀랍게도 그건 자서전이나 소설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수십 년간 아버지의 악몽을 상세히 기록한 일종의 꿈일기였다.

-뭐해?
-어, 아니 뭐 좀 봐
-아빠가 쓴거야?
-…
-…
-싫다 이 인간…
-아버지…
-앗…나도 이런 꿈 꾼 적 있는데…유전이었나…
-하아…
-이런 꿈을 꾸고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