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처형하고 사랑하기

의미의 증가와 정체, 잡음으로 가득한 3차원의 어둠을
언어라는 좁은 창을 통해 훔쳐봤다
세계는 그 창밖에만 존재했다
부조리의 탄생을 그저 바라보며
간절히 무죄 선고를 기다렸지만
역사는 죽음이라는 은폐된 담보로
집행을 연기할 뿐이었다

나의 천국은 오직 2차원의 지도 위에 존재한다
압축되어 의미가 제거된 이미지들
공평한 처형의 풍경이다
자신의 상처를 벌려 피해의식의 힘으로 어머니를 낳는다
어머니에 대한 세공은 관능적인 현기를 일으키며
강박에 쾌감을 더해
망상으로 향한다

모순된 구조로 그릴 수밖에 없는 4차원 도형처럼
비문으로 쓸 수밖에 없는 시처럼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탄생하는 사랑처럼
세계의 상처는 세계를 증명한다
거대한 젖은 상처 앞에서 존재는 죄의식을 피할 길 없다
기억은 자신의 흉터가 아닌 흉터의 흉터를 어루만지는 일이었다
와해된 존재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으로 자신을 만든다